
김성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협회장
대한민국 전기차 시장이 ‘양적 팽창’의 정점을 찍고 있다. 2025년말 기준 90만대를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전기차 100만대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2016년 말 보급 대수 1만대 돌파를 자축하며 샴페인을 터뜨린 지 불과 9년 만에 거둔 100배의 기적이다. 특히 지난 2월 신차 판매 비중을 보면 수입차의 40%, 국산차의 27%가 전기차였다. 도로 위 자동차 3대 중 1대가 전기차로 채워질 만큼, 전기차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약적 성장의 배경에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쏟아 부은 막대한 예산과 충전 인프라 구축 노력이 있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차량 대비 충전기 비율(차충비)에서 우리나라는 OECD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전기차를 타기 편리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지표 뒤편에서는 사용자들의 한숨 섞인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전기차 선택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경제성’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한국전력의 전력 도매가와 민간 충전 요금의 ‘기이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한국전력은 2024년 이후 전기차 충전용 전력 요금을 사실상 동결해왔다. 한전의 누적 적자 속에서도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 공급가를 억제해 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소비자들의 피부에 닿는 민간 충전 요금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특히 주거지 완속 충전기 요금은 최근 2년 사이 무려 2배 가까이 폭등했다. 원재료 격인 전기 요금은 그대로인데, 가공품인 충전 서비스 가격만 치솟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업자들은 2022년 한전의 특례 할인 종료와 2024년 인천 청라 화재 이후 강화된 안전 시설 비용 등을 인상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진짜 원인은 수면 아래 숨겨진 ‘기형적인 영업 비용’에 있다. 현재 충전기 설치 시장은 ‘보조금 사냥꾼’들의 전쟁터로 변질됐다. 2018년 충전기 1대당 평균 5만 원 수준이었던 영업비는 현재 1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해진 탓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에서 요구하는 이른바 ‘아파트 발전기금’ 명목의 리베이트 관행이다. 한전이 깎아준 전력 요금 혜택이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대신, 중간 단계의 리베이트와 영업비로 새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실책 또한 뼈아프다. 수년 동안 정부는 충전 수요나 사후 관리 여부보다는 오로지 ‘설치 대수’라는 양적 실적에만 매몰되어 보조금을 집행해 왔다. 그 결과, 실제 수요가 전혀 없는 곳에도 보조금을 노린 충전기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이용률이 낮은 충전기는 고스란히 사업자의 적자로 쌓이고, 이는 다시 요금 인상 압박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보조금에 눈먼 사업자와 보급 실적에 눈먼 정부가 함께 만든 비극이다.
이제 우리는 전기차 보급 100만대라는 숫자의 함정에서 벗어나 질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첫째,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 체계를 ‘공급 중심’에서 ‘이용 효율 중심’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필요한 곳에 설치하고, 설치된 기기가 제대로 관리되도록 유도하는 정교한 행정이 시급하다.
둘째, 충전기 설치 과정에서의 불투명한 리베이트 관행을 도려내야 한다. 한전의 요금 동결 혜택이 사용자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영업비 거품을 제거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화재 사고 이후 확산된 전기차에 대한 과도한 포비아(공포증)를 과학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근거 없는 공포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규제는 결국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
전기차 100만대, PHEV 20만대 시대라는 새로운 이정표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보급이었는가. 정부, 기업, 그리고 사용자가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공들여 쌓아온 전기차 강국의 위상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그칠 것이다.
출처 : 전기신문(https://www.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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