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스마트제어 방식 완속충전기 보조금 정책이 당초 취지와 달리 시장 왜곡과 요금 상승을 초래하며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공동주택 이용자들이 충전사업자나 설비 운영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제한돼 일방적인 요금 인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단순한 설치 대수 확대라는 양적 성과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요금 체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사용자 보호 중심으로 정책 방향이 전환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업계 전문가들은 27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실과 기후에너지환경부 공동 주최,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전기차 완속 충전요금 급등, 지속 가능한 해법은 무엇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 보조금이 시장 왜곡 불러…"충전요금, 누가 어떤 기준으로 부담할지가 핵심"
허세진 한국생산성본부 수석전문위원은 발제를 통해 완속충전요금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짚었다.
허 수석전문위원은 보조금 기반 설치 확대 정책이 충전기 수량 확대에는 효과적이지만 운영수익 확보와 유지관리 재원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완속충전기는 평균 충전시간이 6~8시간으로 길고 매출 회전율이 낮아 급속충전기 대비 매출 확보가 어려운 구조인데 여기에 전력량요금·A/S(사후관리)비용·기본요금·현장점검비·통신비·플랫폼운영비 등 다양한 비용을 충전사업자가 지속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률이 낮은 공동주택 충전기의 경우 운영수익 부족으로 유지관리 재원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방치 및 고장 사례가 증가하면서 이용자 불편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로밍·요금 정보 비대칭 문제도 지적됐다.
사업자별 앱·회원가·로밍가·비회원가로 나뉘어 이용자가 실제 충전요금을 사전에 비교하기 어렵고 현장 요금표시나 실시간 요금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충전 전 실제 부담액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조금 왜곡 문제도 제기됐다. 보조금이 충전기 품질 개선이 아닌 영업권 확보 수단으로 작동할 경우 정책 효과가 왜곡될 수 있으며 리베이트(rebate)·과도한 마케팅 비용 등 영업 경쟁으로 인한 비용이 장기 요금에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허 수석전문위원은 "완속충전요금의 합리화는 '싸게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비용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부담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투명성·합리성·지속가능성·계통효율성을 대안 설계 4대 원칙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정산체계 분리 ▲원가 연동형 요금 조정 ▲시간대별 요금 정교화 ▲보조금·계약 투명성 강화 ▲공동주택 기본요금 부담 완화 ▲BESS(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V2G(차량-전력망 연계) 모델 등 6가지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 아파트 95% 이상 위탁 운영…충전 요금 직영 대비 두 배
강은택 사단법인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실장은 아파트 관리자 관점에서 바라본 현장 실태를 발표했다.
강 실장은 국내 전기차 충전기 설치 위치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중이 약 72%에 달한다고 밝혔다. 2021년 9.4만 기였던 누적 충전기 보급 수가 올해에는 50만 기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지만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운영 체계는 여전히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운영 방식별 요금 격차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관리사무소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 방식의 충전 요금은 kWh당 150~200원 수준인 반면 전체 아파트의 95% 이상이 채택한 위탁(민간) 방식은 310~330원으로 두 배 가까이 높다는 것이다.
직영 운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아파트 단지 내 전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직원 1인이 모든 시설 관리를 맡고 있어 충전기 점검까지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충전 장비 하드웨어와 결제·통신 소프트웨어(SW) 장애에 대한 대응 역량이 부족한 데다 사고 발생 시 법적 손해배상과 형사 처벌의 직접적인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아울러 기축 아파트의 변압기 용량 부족 문제도 지적됐다. 1990년대 설계 단지는 가구당 전력 1kW 수준으로 설계돼 현재 기준에 미흡하고 기축 단지의 약 32%가 변압기 용량 부족 상태여서 전기차 비중이 증가할 경우 단지 전체 정전 사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강 실장은 개선 방안으로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을 통한 무과실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책임보험 한도 금액 내로 한정하는 방안 ▲아파트 충전기 설치 비용 지원 체계 구축 ▲아파트 전기계약 및 요금체계 개편 ▲이해관계자 협의를 통한 대안 마련 등을 촉구했다.
◆ "매출 상위 6사 중 5사가 순손실…충전기는 설치가 아닌 운영이 과제"
정종선 법무법인 지평 고문·전(前) 한국자동차환경협회장은 충전사업 자체의 지속가능성 조건을 분석했다.
정 고문은 한국이 전기차 보급 변곡점을 이미 통과했다고 진단했다. 2022년 누적 39만 대, 신차 판매 비중 9.6%에서 지난달 기준 누적 102만 대, 신차 비중 25.3%로 급성장했으며 이제 충전 인프라는 설치 경쟁에서 운영 경쟁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충전사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지적했다.
매출 상위 6개 충전사업자 중 5개사가 여전히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개별 기업의 실패가 아닌 충전사업 운영 모델이 투자비와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다는 구조적 시장 신호라고 내다봤다.
정 고문은 1kWh당 원가를 전력원가 180원, 수수료 10원, 판관비 40원, 유지보수 30원, 감가상각 30원 등으로 분석한 결과 현재 실수취 290원이 곧 충전원가 290원으로 사업자 마진이 사실상 0원임을 지적했다. 인프라 사업의 적정 마진인 10~20%에 비해 마진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비교에서도 한국 요금이 여전히 낮은 수준임이 드러났다.
환율 1350원/€(유로화) 기준 완속 회원가는 한국 280~320원인 데 반해 미국 350~500원, 독일 450~600원, 영국 500~700원, 프랑스 400~550원으로 한국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것이 한국 요금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단계적 정상화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 고문은 요금 정상화 이후에도 전기차의 운행비 우위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기준 휘발유 2007원·경유 2001원을 기준으로 km당 전기차 완속 요금(64원)은 휘발유 차량(167원)의 38% 수준이며 5년 누적 절감액은 약 671만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는 ▲운영 신뢰성 ▲ 사용자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정보 공개 ▲지속가능한 요금 등 3가지를 제시했다.
◆ "불법 리베이트 근절해야…요금 오르는 만큼 서비스 품질도 올라야"
토론에서는 한세경 경북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김성태 전기차사용자협회 회장이 아파트 충전 인프라 선정 과정의 구조적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회장은 일부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주체가 충전기 설치 계약을 빌미로 사업자에게 과도한 발전기금이나 리베이트를 요구하고 사업자들도 시장 선점을 위해 이를 관행처럼 수용하며 경쟁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음성적 거래 비용이 사업자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손실 보전을 위한 충전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일반 입주민과 전기차 이용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정부는 공동주택 충전기 설치 과정에서의 불법 리베이트 수수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 규정 및 신고 제도를 마련해야 하며 투명한 사업자 선정 가이드라인(guideline)을 강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또 요금 인상을 허용하기에 앞서 서비스 품질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소비자가 감당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일방적인 요금 인상은 결국 국내 전기차 시장 전체의 고사와 탄소중립 시대의 지연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우재준 의원도 개회사에서 "정부의 스마트제어 완속충전기 보조금 정책이 의도와 달리 오히려 시장 왜곡과 요금 폭등을 유발하며 국민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다"며 "이용자 보호와 지속 가능한 충전 인프라 구축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최근 "완속충전기 요금이 200원 안팎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사업자 간 경쟁 과열과 잦은 설비 교체 등이 이어지면서 소비자 부담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했다"며 "아파트의 충전기 직접 운영 확대 등을 포함한 보완 대책을 다각도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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